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버튼들 사이의 물고기 비늘(플룻의 버튼을 막는 것은 물고기 비늘을 쓴다)들이
전부 오래되서 구멍사이로 바람이 새어 버려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악기를 쓰지 않는다.
연습용 중에서 중학교 1학년이 쓰기에 적당한
17만원짜리 플루트...(물론 무쟝 비싼 거지만, 플룻으로서는 X값이다)
그 은빛은 이미 조금은 퇴색되었다.
하지만,
'한때는 어린 나의 작은 우울함과 슬픔...그리고 조그만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인도해준,
그렇게 해서 하나의 곡으로 배열해주던'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억들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플룻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흘러 나온다.
그런 느낌은 나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품고 있다.
음악 소리가 끊어져 가면서, 더듬더듬 현실을 찾아오는 나는,
이윽고 다시 발견한다.
나에게는 그저 낡은 악기가 하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바람소리가 새서, 그리고 옛 추억이 희미해져 가서,
내 몸의 전부가 바람이 되어 맑은 소리를 꿈을 꾸는 때도 있다.
먼지가 수북한 지저분한 노오란 악보를 보았다.
먼지가 수북하다 못해 음표들을 가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무리 먼지가 쌓여도 먼지는 내용을 바꾸지는 않는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내가 먼지가 많이 쌓였다고 해서, 난 나를 포기할 수는 없다.
내 색깔은 그대로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네게 전화가 왔었다.
"뭐하니..." (넌 말을 항상 밑으로 내린다. 이게 매력이기도 하다)
"응 책봐" (사실 악기를 꺼내서 악보와 보고 있었다)
"달이 만월이다"
"어, 정말이네. 참 밝기도 하다" (갑자기 썰렁한 말을 해버렸다 ㅡ.ㅡ;)
"그러게"
"저 달 보면 네 얼굴이 떠올라 ㅋㅋㅋ" (일부러 웃겨보려고 애쓰고 있다 -_-;;)
"그래 정말 며칠 사이에 얼굴이 뚱그래 져따 ㅡ,.ㅡ"
"오늘 봐봐라. 동생들도 너 너무 이쁘다고 그러지. 넌 좀 더 통통해야 이뻐"
이런 우리의 대화...
정말 편안한 밤이다...
네가 남자친구를 기다리든 말든 사실 무슨 상관인가...
저 달은 너와 나를 이어주고, 내 마음을 들어주는데...
하지만 구름이 끼는 군 ㅡㅡ;
갑자기 시조가 떠올랐다.
하.여.가.
그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나에대해서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너.
그래, 그게 네게 좋다면 나에 대한 감정 자체가 없는게 좋겠다.
그리고, 내 사랑은 점점 안으로 숨어들 것이다.
드러도 못내는 비겁한 사랑따위 이대로 숨겨야겠다.
내 사랑은 따위니까, 욕심에 불과한 거였지. 인정한다.
더이상 울지도 않을 것이며,
나를 가꿈에 너와의 이유를 결부 시키지 않을 것이다.
"취소해줘"
달랑 이 말 뿐이었지만, 이 말엔 내 모든 희망을 걸었었다.
거짓말이라도 "알아따, 알아떠" 정도만이라도 기대를 했었지만,
"취소하지 않아"
인간 세상엔 말로 표현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이는 것에 사람들은 목숨까지 바쳐서
역사를 개척해 왔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때로는 잔인해서,
희망자체가 없는 일은 과감히 포기를 해버리기 일쑤이다.
나는 어떤 역사를 만들 것인가?
그냥...
흘러가는대로...
지켜보겠다.
내 역사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
내 삶을 너에게 귀의 시키기로 결심했던 순간,
너의 역사가 곧 내 역사였으니까.
비교가치에 의한 선택... 그것은 상품의 질적 수준을 고려하는 것이다.
나는 분명 질적 수준이하가 되버렸었다.
하지만, 나도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나를 뜯어고치고 설계를 바꾼 후에,
다시 물어보겠다.
비교가치라는 것은 시시각각 때때로 바뀌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일단 쓰기 시작하면, 새로운 물건으로 바꾸지 않는 습성이 있지.
귀차니즘과, 절야기즘 이지.
인생도 같다고 본다.
네게 선택의 기회가 많고, 얼마든 좋은 남자 만나게 되겠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난 이제서야 자유를 봤다.
네 삶 자체를 인정하고 지켜보기만 하겠다.
그렇다고 널 사랑하는 것, 기다림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말에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난 귀찮은 존재, 부담스런 존재일테니까.
네가 지금 남자랑 결혼을 하든,
더 좋은 가치를 찾아서 살게 되든,
나는 나대로 있으면 되는 것임을 더 이상 갈등하거나,
더 이상 헤매지 않는다.
네 말대로, 네가 불행해 지는 것은 싫으니까,
네가 행복을 찾을 때까지, 거리를 두고, 아니 이 거리는
네 말대로 영원히 좁혀지지 않게 되겠지.
네 행복을 보고 견딜 수 없다면,
그때 가서 죽어도 그만이니까...
네 불행을 보고 견딜 수 없다면,
그때 가서 멈춰도 그만이니까...
그게 내 사랑의 방식이고, 앞으로도 영원할 테니까...
난 고집이 세니까...
그리고 넌 이성이 감성보다 언제나 앞서는 사람이니까...
네 이성에 건승을 보낸다.
네 이성은 행복도 계산해 낼 정도로 뛰어날테니...
믿어보마.
결코 불행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불행은 나 혼자로 족하니까... 어차피 무관심 대상이니까...